1 뀨. ㅇㅂㅇ.

 내가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열일곱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색은 검은색, 그 색밖에 없다 시커먼 사내 새끼들 가득한 남중을 겨우겨우 버텨 고등학교는 공학으로 좀 가나 싶었더니 이게 웬 걸, 떡하니 집에서 버스 타고 삼십 분이나 걸리는 남고에 붙은 그 날을 기점으로 아, 씨발 신이시여를 외치며 하루종일 상심의 표정을 안고 지냈다

 남중, 남고 전형적인 남자들의 학교 과정을 스트레이트로 올라가는 것은 우리 집 내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 시절 핑크빛 연애는 갔구나 싶어서 우울함이 바닥을 뚫었고 똑같은 코스를 걸으나 다른 남학교로 간 박찬열의 뜬금없는 문자 하나에는 희망을 걸었다

  「야여기예쁜애있대ㅋㅋㅅㅂ학교생활즐겁겠다ㅅㄱ」

 그 당시만 해도 문자를 받음과 동시에 박찬열이 부러워 하루종일 몸부림 치며 침대를 굴러다녔던 나는 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리고는 도비년 학교에 그런 애가 있는데 우리 학교에 설마 없겠어 싶은 생각을 믿고 하루하루 좆 달린 주제에 얼마나 예쁠까 고민에 고민을 했었다 빌어먹게도 그게 다 내 헛된 시간 낭비였다는 것은 학교에 들어와서야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러니까 열일곱의 박찬열은 꼴에 예쁜 애 득실거리는 학교 가서 눈호강만 드립다 하고 있고 또다른 열일곱인 나는 꼴에 씨발 공부 좀 한다고 인문계 지원했다가 안경잡이만 가득한 학교에 떨어져 죽어라 공부만 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시간이 흘러 검게 물든 작년이 지나 학년이 올라가고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통 넓은 바지는 꼴 보기 싫은 건지 하나같이 꽉 줄이거나 혹은 적당히 줄인 바지에 각 잡힌 교복을 입고 줄 서서 쭈뼛쭈뼛 입학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새내기들을 보니 괜시리 설레는 게 작년에 내가 입학했을 때 날 보던 형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다

 삼학년으로 올라간 형은 하는 짓이 외모를 따라가는 건지 학생회장에 덜컥 당선됐고 그와 동시에 더 바빠져서 학교든 집에서든 자주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유독 붙들고 사는 핸드폰 때문에 연락은 문제가 없다는 것 정도 카카오톡이나 문자 답장 속도는 나보다 빠르다거나 전화를 걸면 일 분 이내로 받는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멍하니 새내기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불현듯 작년이 떠올랐다 올해도 설마 인물이 없을까 싶어서 이리 둘러보고 저리 둘러봤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역시나 새내기들 교복 상태를 보니 올해 선도부는 죽어나겠구나 싶은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끝으로 나는 올해도 죽어라 공부만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 씨발 서울대 아니, 못해도 인서울만 하면 예쁜 여자들이 차고 넘치겠지 지옥같은 일학년 시절을 다시 한 번 되풀이
할 생각을 하니 왜 형의 성적이 유독 높았는지 알 것만 같다



  야, 빠오즈

 입학식은 볼 것도 없었다 지루하고 지루했으며 굳이 볼거리 하나를 고르자면 새내기들의 떠드는 소리가 높아만 져서 학생주임 선생님이 화가 나서 입학식 날 새내기들이 빳빳한 교복과 함께 한 차례 기합을 받는 모습 정도 우선 내가 받지 않으니까 꽤나 즐거웠던 건 사실이다

 아무튼 배정 받은 반에 들어오자 딱 보이는 민석이가 반가워 어깨를 툭 치며 옆자리에 앉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다 괜시리 무안해져서 에이, 씨발 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창문으로 힐끔 운동장을 내려다 봤다 허허벌판 마냥 넓다란 운동장에 조만간 축제다 뭐다 하면서 세워질 것들이 그려졌다 남고 축제의 꽃은 여장이라던데 씨발.. 화장의 힘은 위대하다던데 남자한테는 그 힘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작년에 깨달았고 본판 불변의 법칙 또한 그 날 동시에 깨달았다 특히나 김민석은 아… 설마 올해도 나갈까?

  빠오즈

 불길한 생각에 고개를 휙 돌리니 우리 형한테 옮은 건지 김민석은 핸드폰을 양손에 꼭 쥐고 토독토독 액정만 누르고 있다가 곁눈질로 힐끔 보다가 왜 하고 말았다 그 힐끔 거리는 모습에 작년 여장 모습이 오버랩 돼서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또 불현듯 떠오른 게 신나게 놀려줄 생각으로 빠오즈 여장 사진을 몇 장 찍어 둔 걸 박찬열에게 보여주자마자 정색하며 했던 드립 하나 머리 산발에 꽃 꽂은 미친년도 얘보단 예쁘겠다

  너 이번 여장도 나갈 거야?

 그때 박찬열이 이 학교였으면 빠오즈는 아마 상처 크게 받았을 것이다 아무튼 부정의 대답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빠오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영 대답할 기미가 안 보인다 입은 꾹 닫고 계집애처럼 아직도 핸드폰을 쥐고 토독토독하길래 한 번 더 재촉할까 싶어 입을 떼려는 순간,

  선생님이 나가래 보고 싶대
  선생님? 아, 그 예쁘장한 짱깨?
  죽을래?

 유독 빠오즈는 짱깨라는 말을 싫어했는데 지가 좋아한다나 어쩐다나 하는 선생님이 중국인이라서 그런지 더한 것 같다 빠오즈라는 별명도 중국인이 지어줬는데 중국인이 첫 중국어 수업을 들어왔을 때 애들을 한 명, 한 명 훑어보다가 빠오즈를 딱 보고 한 첫마디가

  빠오즈

 중국어를 좀 배워둔 아이들을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웃음을 터뜨렸고 중국어의 지읒도 모르는 빠오즈는 그게 뭐지? 하면서 눈만 도록도록 굴려댔다 중국인은 그런 빠오즈에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고 싶었는지 교탁에 붙어있는 이름표를 한 번 훑더니 고개를 들어 민석이를 한 번 보더니 더 환하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민석, 어, 음, 만… 두? 그거 닮았어요
  … 네?
  만두, 빠오즈

 빠오즈가 짱깨라는 말을 싫어하기 전에는 독보적인 단어가 만두였다 통통한 볼살이나 먹으면 죄다 살로 가는 체질이 제 나름대로 고민이긴 했던 모양인지 애들이 장난이라도 만두라고 하면 불같이 화내기 일쑤였다 그런 김민석이 처음으로 화를 안 내고 아… 네 하고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첫사랑은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갈 거라고 지랄지랄을 하더니 고작 반한 게 예쁘장한 중국인이라니 아무튼 그 뒤로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아마 중국인이랑 많은 발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쉴 새 없이 카톡을 하는 걸 보면

  진짜 나가?
  나가래잖아
  씨발 그 날 아는 척 하지 마라
  좆 까 선생님이랑 붙어 있을 거야

 미친놈 중국인이 그렇게 좋나 하고 쯧쯧 혀를 차자 빠오즈는 대꾸할 가치도 못 느꼈는지 도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짱깨는 수업 준비도 안 하나 비꼼이 가득한 혼잣말에 결국 옆구리를 한 대 맞긴 했지만



 입학식이 일찍 끝나는 걸 바랐지만 그런 건 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없으리라 장담한다 짧디 짧은 소갯말을 끝으로 한 시간 내내 자습을 주는 선생님이 있는가 반면 바로 수업에 들어가는 선생님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교시 내내 눈치 보면서 토독토독 거리던 빠오즈는 사교시 쉬는 시간 종이 딱 치자마자 목 아프다면서 스트레칭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톡 적당히 해
  왜
  수업 집중을 못하겠잖아 병신아

 지가 언제부터 공부했다고 궁시렁 거리면서 교실 뒷문으로 향하는 빠오즈를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첫 날부터 도경수 찾아서 같이 밥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된 것 같다 슬슬 일어나서 핸드폰 꺼내들고 몇 반이냐고 물어보니 칠 반이랜다 한 층 더 올라가야 하는 고생 때문에 절로 인상이 쓰이는 걸 꾹 참고 왼쪽 복도 끝을 향해 걷고 있자니 어디선가 하얀 게 불쑥 튀어나왔다

  아, 씨발 놀래라
  김종인 맞아요?

 키는 비슷한 것 같은데 딱 보자마자 제일 먼저 보인 건 양아치 티를 아직 못 버린 건지 아니면 자연인 건지 연한 갈색빛을 띄는 머리색 그 뒤에 아래 위로 쓱 훑어보니 몸에 딱 맞게, 나름 단정하게 입은 교복이 두 번째 하얗디 하얀 얼굴이 세 번째

  너 누군데
  종쌀람
  뭐?
  이라고 형이 그렇게 부른다면서요
  씨발

 좆같은 별명에 무조건 반사 마냥 욕이 나왔다 욕을 듣자마자 그 말간 얼굴에 웃음이 만연했다 여고생의 꺄르르 거리는 웃음소리보다 더 특이한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보자니 상한 기분이 풀렸다 그 중 제일 돋보이는 얄쌍하게 접힌 눈은 귀엽기보단 야살스러웠다 

  형이 찾아요
  형이 날 왜
  충전기 필요하대요 급식실 가기 전에 충전기 자기 교실에 두고 가래요

 형 반이 어디더라 곰곰이 생각을 해도 형은 아직 나에게 자기 반을 알려준 적이 없다 전화를 해봤자 배터리가 없어서 못 받을 것 같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자 앞에 있던 애가 입을 열었다

  삼 반이래요
  어?

 다시 한 번 눈꼬리가 얄쌍하게 접혔다 습관처럼 아래에서 위로 훑어 올리니 손목에 들어찬 팔찌가 눈에 띄었고 연한 갈색의 머리카락이 부드러워 보였고 뭐라도 바른 것 마냥 발간 입술도 눈에 띄였다 아, 그러니까

  오세훈이구요

 갑자기

  저도 삼 반이에요

 예뻤다고

  찾아갈게

 오세훈이


덧글

  • 루민쨔응 2012/05/29 22:24 # 삭제 답글

    즐겁게 웃으면서 첨부터 끝까지 읽었네요ㅋㅋ 먼가 읽고 유쾌해진 기분이 들어서 좋네요~!!특히 짱깨선생...ㅋㅋㅋㅋㅋㅋㅋ 담편두 기대기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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